2021 끝 2022 시작


2021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의 외할머니와 이별했고,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확신이 생겼고,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알게 되었고, 마라톤을 두 번이나 했고, 차를 아주 좋아하게 된 해이다. 올해도 Year Of 땡땡으로 회고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Year Of 음악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음악들로 선정했다. 만약 내가 이 음악들을 테이프로 들었다면 테이프가 늘어날 대로 늘어나 버렸을 거다. 들으면서도 듣고 싶은 노래들이라 아주 질릴 때까지 들었다. 백현의 놀이공원이라는 노래는 외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대구에 내려가는 길 내내 들었다. 노래의 가사가 마치 할머니가 나에게 해주는 말 처럼 느껴졌다. 유라의 미미, 검정치마의 링링도 닳도록 들었고 지금도 좋아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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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Of 책

2021년에는 여러 경로로 다양한 책을 접했다. 책 선물도 많이 받았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빌려도 보고, 전자책으로도 읽고, 가끔 들리는 서점에서 구매해서 또 읽었다. 그중 세 권을 뽑았는데, 첫 번째 책은 브로드컬리 편집부에서 만든 목공, 목수, Carpenter 라는 책이다. 여름 휴가로 간 제주도에서 이 책을 사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아주 나중에 개발자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일상을 보낼까? 라고 생각해봤을 때 항상 '목수'라는 직업이 마음에 끌렸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삶에 대한 동경에서부터 출발한 생각이다. 이 책은 그런 생각에 답을 주는 것처럼 꾸며냄 없는 목수의 삶을 알려줬다.

두 번째 책은 김창준 저자의 함께 자라기 책이다. 추천을 받았던 터라 도서관에서 책을 발견하자마자 고민 없이 빌렸다. 애자일 방법론이나 협업하는 방식 등에 대해 알려주는데 이런 방법들은 모두 쉽고 빠르게 내가 하는 일들에 적용할 수 있어 좋았다. 개발자뿐 아니라 성장하고 싶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책은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이다. 걷기 아주 좋은 날의 연속이던 6월, 회사 앞 여의도 공원에서나 혼자 간 식물원에서 산책하며 읽었다. 프라하에 살 때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를 자주 들었다. 걷기 예찬은 그때 소개된 책이었고, 그로부터 3년 정도가 지난 뒤에서야 읽게 된 이 책은 오랜만에 만난 마음에 오래 남는 책이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자동차 연수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갈 수 있는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많이 걷고 싶고,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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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Of 영화

올해 초에 중고로 빔프로젝터를 샀다. 그 덕분에 영화를 많이 봤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영화 외에는 그렇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영화를 보는데 시간을 쓰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애니메이션 영화인 데다 스릴러 같은 장르에는 흥미가 없지만 몇 가지 얘기해볼까 한다.

하나의 영화를 여러 날에 걸쳐 나눠 보는걸 좋아하는 나에게 리틀 포레스트와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이 두 영화는 최적이었다. 커다란 사건 없이 영화는 계절의 흐름대로 흘러간다. 손님을 맞이하고 요리를 하는 게 내용의 전부인 이 영화들은 직접 해 먹는 요리에 대한 내 생각을 바꿨다. 극 중 혜원은 이렇게 말한다. 최고의 요리는 아무래도 직접 해 먹는 게 아닐까? 하고. 이 영화들을 본 이후로 요리를 자주 해 먹기 시작했고, 이는 2021년에 가장 잘한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긴 어게인은 이미 여러 번 봤지만 또 봤고, 또 올해의 영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댄과 미리암이 다시 재회하는 장면이다. 둘은 MP3 하나에 듀얼 젠더를 연결해 이어폰 두 개를 꼽고 음악을 나눠 들으며 손을 잡고 뉴욕 곳곳을 걸어 다닌다. 건물 옥상에서 밴드가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을 연주하고 부르는 장면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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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2021년은 나에게 자유로움과 행복을 많이 느낀 해다. 경제적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현재 나의 상황에 완전히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 경제적 자유에는 여러 단계가 있고 그 첫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올해 초에 행복을 느끼면서 '내가 느끼는 지금 이 행복은 진짜인걸까? 언젠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잠시 했었다. 행복한 일이 있어서 행복했다기보다는 현재 삶 자체가 나에게 행복이라 느껴졌다. 그렇게 행복함과 약간의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던 도중 외할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불안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행복에 대한 확신을 줬다. 행복한 마음이 들면 그 행복을 최선을 다해서 누리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의 마음에 행복과 기쁨이 찾아오면 나는 완전하게 누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꾸준함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에는 일기도 꾸준히 작성했고 (그 덕에 회고를 하는 게 수월했다) 달리기도 꾸준히 했고 (너무 추울 때나 너무 더울 때를 제외하고) 책도 꾸준히 읽었고, 피아노도 시간이 나는 대로 연주했다. 작년 회고 글에서 다짐했던 것 중 대부분을 성공한 셈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어떤 일을 단번에 해내는 것도 멋지지만, 어떤 일들을 지속해서 꾸준하게 해내 가는 삶도 멋지다. 2021년에는 어떤 것들을 지속해나가고 싶은지 알게 되었으니 2022년에는 이러한 것들을 잘 지켜내고 싶다. 가장 큰 두 가지는 청소와 요리이다. 이 둘은 이제 나에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행복을 주는 일들이 되었다.

어떤 개발자가 될 것인가에 관한 질문에 답을 찾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어떤 멋진 답을 하고 싶었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고, 그 이후로 항상 이 질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답을 찾은 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지? 라는 생각을 할 때이다. 나중에 목수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나는 내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고 그게 개발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기술적인 문제를 풀고 싶어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사회적인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나는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자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새로운 피쳐를 배포했는데, 이때 다시 한번 나는 제품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2022년은...

2022년은 올해 정립한 나의 습관들이나 생각들을 잘 지켜나가고 싶은 해이다. 요리를 더 자주 해 먹고 싶고, 책을 많이 읽고,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가고 싶고, 많이 걷고 싶고,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만들고 싶은 걸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게 어떤 영역이 되었든 학습하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이 배우고 많이 만들고, 만들면서 작은 실패와 성공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눈치채고 감사히 한껏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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