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을 잇는 커뮤니티


아래의 인터뷰는 2019년 상반기에 진행되었습니다. 지홍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디자인 스펙트럼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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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와 현재 하는 일에 관해서 얘기해주세요.

디자인 스펙트럼이라는 디자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운영하는 김지홍입니다. 삼성전자에서 UX 디자이너이자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일했고 2017년 2월 회사를 나와서 디자인 스펙트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가 주관하는 디자인 콘퍼런스, 팟캐스트, 교육 콘텐츠를 통해 디자이너분들이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디자인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지적 콘텐츠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언제 처음으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학원에서 소묘 등을 배웠습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서양화, 동양화과에 진학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가 다녔던 미술학원이 알고 보니 디자인 대학 전문 학원이더라고요. 고민하다가 학원 측에서 디자인이 더 전도유망하다는 말을 듣고 디자인과를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의 전 자기 주도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는 그저 가능성이 높은 쪽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비록 어릴 때의 계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선택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각 디자인과에 들어가서 어떤 걸 주로 배우셨나요?

그래픽 디자인을 주로 배웠어요. UI, UX를 포함하지 않은 책이나 광고, 포스터 등으로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어요. 웹디자인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학에 들어갔을 당시의 저는 그렇게 웹 쪽에 관심이 많진 않았습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다가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학교에 입학하고 입대 전에 아이폰이 출시되었어요. 제대하고 나니 그래픽 디자인에 몰려있던 시장이 인 쪽으로도 많이 확대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그 시기에는 다들 직업 걱정을 하기 시작해요. 저도 그 시점에서 내가 그래픽 디자인을 좋아하고 열심히 했지만, 이걸 그대로 들고 나갔을 때 내가 남들과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뭐가 더 재밌을까? 라고 고민했어요. 남들이 안 하는 게 재밌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UI 디자인을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 시기에 삼성 디자인 멤버십에 시험을 봐서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럼 대학교 3학년 때 삼성 디자인 멤버십에 들어가서 UI 디자인을 배우신 건가요?

네. 학교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학교를 마치고 나서는 멤버십에서 UI 공부를 하는 생활이 2년 동안 반복됐습니다. 졸업 전시에서도 졸업작품을 그래픽 디자인으로 할지, UI 디자인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두 가지 작업을 다 했어요.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직업적으로 UI 디자인을 선택한 거죠.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고 작업해봤던 경험이 UI 디자인을 하면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영향을 끼친 점이 있나요?

그래픽 디자인을 배울 때 교수님들로부터 '왜' 에 대한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라고 배웠습니다. 나는 '왜' 이 포스터를 만들었는지, '왜' 이런 기법을 사용했는지, '왜' 이 포스터는 이렇게 만들어져야 했는지. 이런 시각과 탐구들은 UI 디자인을 할 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유저들의 '왜' 이 서비스를 쓰는지, 그렇다면 우리 서비스의 UI는 '왜' 이렇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등의 가설 세우기와 문제 해결 방법 찾기를 시작점을 잡을 수 있었거든요.

삼성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삼성은 분업화가 잘 되어있는 회사라 디자이너는 전체가 아닌 일부분의 기능 중 어떤 UI를 작업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처음에는 삼성전자 VD 사업부(쉽게는 스마트 TV를 주로 만드는 사업부)에서 TV에 들어가는 각종 UI를 디자인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4년 차가 되었을 때, 회사에서 새로운 팀을 만드는 데 참여할 기회가 생겨서 2년을 더 있게 되었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부분부터 기획, 브랜딩, 디자인, 마케팅까지 관여할 수 있던 팀이라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실리콘밸리 및 유럽에 있는 팀들과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다양한 외국 디자이너들도 만났습니다. 스케치(Sketch)라는 도구도 그때 알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알던 디자인 방식이나 도구 말고도 다른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경험을 사람들에게 얘기해주고 싶어서 5년 차부터는 스케치 커뮤니티를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2017년에 본격적으로 디자인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어보자 해서 회사를 나오게 되었어요.

한 회사에서 총 6년 동안 디자이너로 있으면서 많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을 만나봤을 것 같아요. 주니어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건 어떤 게 있을까요?

무엇이든지 자기 것으로 체득하려고 했던 분들이 가장 크게 발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체득의 과정에는 타인의 관점과 의견에 대한 경청과 수용이 동반됩니다. 저는 처음에 고집이 엄청 강했어요. 제 디자인에 대해 관철하고자 했던 때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다양한 프로젝트와 상황에 놓이다 보니 제가 생각했던 정답이라는 것은 수많은 답 중 하나일 때가 많았고, 최선이 아니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느리지만 조금씩이나마 다른 분들의 의견과 시각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그 이후에야 비로소 디자이너로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이건 UX 디자인 분야에 한정된 의견입니다. 그래픽디자인은…. 개인의 개성이 아직도 크게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디자인 작업은 더는 하지 않고 커뮤니티 활동만 하시는 건가요?

지금은 디자이너의 길과 커뮤니티 운영의 길의 갈림길에 있었어요. (2019년 1월 기준) 2018년에 UX 디자인 컨설팅 / 디자인 작업과 커뮤니티 운영 두 가지를 병행했었는데 물리적인 체력이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낮에는 디자인 일, 밤에는 커뮤니티 일을 하면서 모드 전환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1년을 그렇게 해보니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커뮤니티 업을 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디자인 작업을 하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 스펙트럼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나요?

커뮤니티 업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기대하는 것은 선한 비영리 활동이지만 커뮤니티가 커지면 커질수록 금전적인 부분에서 안정성이 필요해요. 원하는 이상적인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운영을 하는 법을 더 익혀나가야 하죠. 캐시플로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내 외부에서 수급할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을 토대로 분석하고 있어요. 팟캐스트, 콘퍼런스, 세미나, 교육 프로그램 등에서 하나씩 증감에 대한 데이터가 나오고 있어서 가장 확률이 높은 것, 사람들에게 닿기 쉬운 것들을 골라서 하나씩 본격화할 예정입니다.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2018년 2월에 '스펙트럼 콘'이라고 해서 1년에 한 번 하는 대규모 IT 스타트업 디자인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규모가 약 1,000명 정도 되는 콘퍼런스인데, 학회나 디자인 전체를 아우르는 행사는 많지만, UX 행사는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어요. 지방에 계시는 디자이너분들도 1년에 한 번이라면 올라오실 수 있지 않을까 하기도 했고요. 힘든 점은 있었지만 큰 무리 없이 끝나서 그걸 준비하는 과정, 행사 당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이걸 매년 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올해는 6월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팟캐스트를 하다 보니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는데요. 디자이너분들, 미술 가르치는 선생님들, 학생분들이 남겨주시는 댓글 하나하나가 힘이 되고 기억에 남습니다.

2019 디자인 스펙트럼 목표는 뭔가요?

커뮤니티를 본격화하고 사업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디자이너분들이 들으시는 콘텐츠의 퀄리티를 증가시키는 데 신경을 쓰고 있어요. 교육과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상 깊게 본 것이 있나요?

UX 디자인, 프로덕트 디자인 관련하여... 이제는 공통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기 위해 그 밑에 있는 논지를 세우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논지를 설계하려면 끊임없는 가설 검증과 테스트가 필요하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디자이너들이 비 디자이너의 분들에게 논리적으로 디자인의 근거를 이야기하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구애받지 않는 것이 시간이라면 크리에이터 일을 추가로 더 하고 싶어요. 디자인 스펙트럼에서 현재 가장 많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비디오 콘텐츠거든요. 비디오 콘텐츠가 두루두루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요즘이지만 제작을 위한 물리적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서 (심지어 효과를 보려면 꾸준하게 자주 만드는 게 무척 중요하거든요) 지금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면 디자인 관련 비디오 콘텐츠를 지속해서 제작하고 싶습니다.

5년 뒤 모습은 어떨 것 같나요?

디자인 스펙트럼을 시작하고 2년간은 쏟아부은 시기에요. 5년 뒤에도 계속하고 있다는 건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설정하고 설계를 마쳐서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겠죠? 보이는 표면적인 현상으로는 온라인,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더 많이 공유하고 다양한 디자이너들의 프로젝트가 커뮤니티를 통해 발화되는 상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기회와 도전을 이어주는 자리도 만들 수 있을 만큼 활성화가 되어있는 공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디지털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 주니어 또는 학생 디자이너를 위해서 조언을 해준다면?

주니어 또는 학생 디자이너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적응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게 연락을 주시는 주니어분, 학생분들께서는 ‘좋은 UX 디자이너 혹은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등을 주로 물어보세요.

저 스스로부터 발전해야 하는 점이 너무 많아서 답변드리기 쉽지 않지만… 같이 고민해보고 싶은 지점은 있습니다. ‘왜 프로덕트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해보고 고민해보는 것이죠. 그러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답이 도출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내가 왜 이걸(UX, 프로덕트 디자인) 하고 싶지? ->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에 -> 그럼 어떤 분야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까?’라는 질문에 당도하고 분야에 대한 자기 선호도를 고민하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관심이 있는 것을 찾고 그를 토대로 할 수 있는걸 찾아 나가보는 거죠. 적어도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시작해야 더 알고 싶은 마음과 탐구하고 싶은 열정이 생기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디자인을 그려내기 용이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부탁입니다. 주니어 디자이너, 그리고 학생분들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크고 작은 행사에서 섭외할 때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제가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입니다. 이는 주로 ‘자신의 발언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는 것, 그리고 '이게 답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염려입니다.

UX 디자인, 프로덕트 디자인에서는 하나의 정답만이 있기 어렵습니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답들이 여러 개 존재할 수 있죠. 답의 다양성을 찾기 위해선 다양한 사례와 견해,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고민에 있어서 답을 도출해주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용기를 내어 서로 함께하였으면 좋겠습니다.